불가리아

불가리아 릴라수도원

相民 윤봉택 2024. 3. 3. 18:10

2014. 2. 16. 10:00

 

릴라수도원 Rila Monastery (Rilski Manastir)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그리스 방향으로 약 117km를 더 가면

릴라산 남서부 릴스카강(Rilska)의 깊은 자락 1,147m 지점에

불가리아인들의 영원한 안식처 릴라수도원이 있습니다.

 

오스만 터키 지배 당시에도

유일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인정 받았던 수도원.

 

발칸반도의 문화유산 답사 두번 째 날, 오전

2014, 02, 16일에는

릴라수도원을 찾았습니다.

 

소피아에서 하루를 유한 우리 일행은

아침 7시에 조반을 하고

8시에 출발, 두 시간여를 달려서

릴라수도원을 짓기 위해 모여들어 릴라라는 마을이 설촌되었다는

릴라를 지나 오전 10시 경에 릴라수도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침엽수림에 둘러싸인 골짜기에 세워진 흰 벽과 붉은 지붕의 이 사원은

14세기 불가리아 문화를 전해주는 벽화와 석탑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모든 정교회 수도원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도원 안의 박물관 지하에는 12년이나 걸려 조각 했다는

목조 라파엘 십자가와 많은 역사적 유품이 수장되어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마치 요새와도 같은 모습을 한 이 수도원은 

은자들로 이루어진 수도원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이반 릴스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에 치유 능력을 지녔다고 해서 유명했으며, 그로 인하여

이후 중세의 통치자들은 무척이나 그의 유골을 손에 넣고 싶어 했기도 하였답니다.

 

유골은 1183년 에스테르곰으로 갔다가 비잔틴 제국과 불가리아를 거쳐

결국 1469년 릴라 수도원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외세 침입이 많았던 불가리아는 수도원도 예외 없이 건물 자체도 빈번하게 약탈당하고

이를 다시 짓는 일을 계속해 오느라 유골에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1833년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자,

1834년 부터 이듬해 까지 면적 3만 2000㎡, 수사들의 독방 300개, 예배실 4개, 도서관 등을

조성하여 수도원으로 재건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불가리아 정부에 의해 국립 박물관으로 선포되었고,

 

198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지정되었습니다.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릴라수도원까지는 117km입니다.(지도/구글) 

 

 

 79번 도로에서 1번 도로 그리고 다시 릴라로 이어진 107번 도로를 따라 가면

 릴라수도원에 닿을 수가 있습니다.(지도/구글) 

 

 

길은 누구에게나 있으나

누구나 갈 수 없는,

그리스로 이어지는 길 따라 117km를 달리면

불가리안인들의 안식처 릴라수도원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잠시 주유소에 머물 때 불가리아인들과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가수 싸이를 아느냐며 강남스타일을 흉냈습니다.

 

 

 릴라 수도원은

 이름 없는 마음 가난한 이웃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수도원의 자재를 운반하여 세웠고

 그들이 머무르며 형성되었다는 릴라촌입니다.

 

 

 미류나무가 길게 늘어선 릴라촌 입구

 이곳을 찾는 나그네들에게 더욱 더 숙연하여야 함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성인 이반 릴스키(876∼946)가 릴라산에 은둔하였던 릴라산정에는

일곱개의 호수가 있어 뭍 사람들을 부르는데.

 

 밀라수도원 입구 입니다.

 

14세기 초 큰 지진이 일어나 건물이 파괴되자, 이 지방의 귀족인 흐렐리야 오흐무체비치가

견고하게 다시 지었는데, 1335년에 세운 높이 25m의 흐렐리야석탑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후, 17∼18세기, 오스만투르크제국 내란으로 여러 차례 습격을 당하였고,

 

1833년에는 큰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모두 소실되자, 1834년부터 다시 복구가 이뤄졌습니다.

 

 

 수도원 입구입니다.

 

 

 수도원 입구에서 홍예형관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좌우에 벽화가 있고

 바닥에는 비교적 큰 판석으로 마감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행자들이 이곳을 찾았으면 판석들이 저처럼 거울 같이 빛을 낼까요.

 

 입구 마지막 상단에는 커다란 사슴 뿔을 걸어 놓아  수도원의 위엄과

 인간의 사악한 마음을 추스리고 있습니다.

 

 

 

수도원 입구를 지나면 뜨락 또한 모두 판석으로 마감하여 집중 호우가 나리더라도 토양 유실을 막고, 또한 화재로 부터 위험을 예방하는 등  수도원과 조화로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뒤에 보이는 산이 릴라산입니다.

 

 

 입구 맞은 편에서 입구 방향으로 바라본 건물입니다. 맨 아래에는 좌우로 회랑이 있고, 칸 사이는 모두 아치형으로 장엄하였는데 비잔틴양식입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탑이 높이 25m 흐렐리야탑(Hrely's Towor)석탑입니다.

 지난 화재에도 유일하게 화마를 입지 아니하여 최초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흐렐리야는 14세기 초 릴라수도원이 지진으로 건물이 모두 파괴되자,

이 지방 귀족인 흐렐리야 오흐무체비치 영주가 1334년 부터 5년 까지 2년 동안 견고하게 수도원을 복구하였는데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러나 1833년 다시 화재로 모두 소실되자, 1834~1862년 까지 복구를 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면서

 면적 32,000평방미터에 생활관, 박물관, 성모승천교회 등 크게 3개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도원 내부에 세워진 성모승천성당, 지붕은 24개의 크고 작은 지붕으로 장식을 하였고, 1천2백여점의 프레스코화는 19세기 유명한 화가 자하리 조그래프, 티미타르 조그레프 형제 등이 참여하여 1846년에 마감을 하였는데 당시 릴라촌에 모여든 수많은 신앙인들의 고난상도 함게 하고 있습니다.

 

 

성모성당 우측 풍경, 뒤편에 박물관이 있습니다.

 

 

수도원 입구 우측에 있는 회랑의 석주와 바닥 판석

석주는 원통형이나 여러 개를 이어 놓은 것으로 보아

당시 이곳 까지 자재 운반이 참으로 어려웠음을 짐작해봅니다.

 

 

 성당 우측 건물 회랑 중심에 달려 있는 종과

 건물 층간을 연결하는 목제 계단, 그리고 지하로 연계된 통로입니다.

 

 

 지하로 연결된 통로입니다.

 

 

성당 죄측의 건물과 흐렐요탑과 회랑입니다.

 

 

성당 좌측 뜨락에서 담았습니다.

 

 

성모성당 우측에서 박물관으로 연결되는 공간입니다.

 

 박물관입구입니다.

 

박물관은 두개의 층으로 꾸며져 있는데, 출입문입니다.

 

 

 

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인쇄기로서  당시 수도원에서 쓰여진 기구들입니다.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성경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직물

 

 

수도사 라파엘이 12년 동안 제작한 목조 십자가상입니다.

릴라수도원에 가서는 반드시 이 십자가상을 보아야 합니다.

전후 좌우에는 36가지의 성경 말씀과

그 말씀과 함께 하는 6백여명,

수도사 라파엘은 이 십자가를 조각하며 너무나 심혈을 기우린 까닭에 십자가 조각을 끝낸 1802년에는

눈이 멀어 소경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십자가상에 담겨진 신앙력을 그 상상을 초월합니다.

 

십자가상 후면,규격은 81cm, 43cm입니다.

 

성모승천성당 우측면으로 전면이 7칸입니다.

 

 

예배를 마치신 수도사님 께서 전면 2층으로 가시기 위해 걸어 가고 있습니다. 

 

 

 뒤 따르시는 젊은 수도사님은 사진 담는 것을 많이 부담스러워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수도하시는 분들이 세척하는 곳입니다.

 

 

아치형 문살조차도 모두가 다르게 하여 놓을 만큼 세심함의  극치를 보았습니다.

 

 

입구 좌측 회랑에 걸어 놓은 종입니다.

종을 지탱하고 있는 가구 하나 하나에도 조각을 하여 놓았음은,

 

 

 아래에는 좌우로 긴 널판을 걸어 사찰의 목어 또는 운판처럼 하였고,

 그 우에는 종을 달아 마치 사찰 종각의 사물을 연상할 만큼 ,

 

 

 수도원 내부에는 이렇게 처소마다 손을 세척할 수 있도록 석수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입구 주초석입니다.

 

 

입구 출입문입니다.

 

 

입구 통로 우측 회랑 벽화입니다.

 

 

입구 통로 중앙 천장 벽화입니다.

 

 

입구 통로 좌측 회랑 벽화입니다.

 

 

입구에서 바라본 성모승천성당 우측입니다.

 

 

성모승천성당 내부 공간입니다.

 

 

성모성당 내부 벽화입니다.

 

 

성모성당 입구 우측 회랑입니다.

 

 

성당 입구 좌측 벽화입니다.

 

 

성당 입구에서 바라본 좌측 벽화와 기단석입니다.

 

 

성당 입구에 세워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안내판,

릴라수도원 만큼이나 소박함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가는 길

왔으니, 이제 다시 또 돌아가야 하겠지요.

이렇게 돌아서면,

다시 어느 날을 기다려 이곳으로 닿을 수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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