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9. 17.
서귀포문학사는
2014년 한국문협 서귀포지부에서 발간한 『서귀포문학, 25집』과
2007년 발간된 『서귀포예총10년사』에서 발췌하여
서귀포시에서 출생한 등단작가 중심으로 1956~1995년까지만 정리하였음을 밝힌다.
※ 서귀포시에서 창작활동/하고 있는 문학인들은 정리되는대로 게재하고자함.
1996년 천지연에 세워진 서귀포 최초 시인 小雲 김광협 시인의 시비
1992년 김광협 시인께서 작고 1년전에 집필한 두번째 번역시집 『투르게네프 산문시』에 그려진 김광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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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문학은 크게 한문학과 국문학으로 나눌 수가 있다.
1950년 이전까지의 서귀포문학은 유림을 근간으로 한문학이 주류를 이뤘다.
특히 마을 향사와 서당을 중심으로 발달되었으며, 마을에 있는 주요 가문의 문장들이 계契를 통해
한문학에 뿌리를 둔 한시가 전승되어 왔다.
지금도 정의·대정향교 유림들에 의해 정례적인 한시 백일장을 명맥을 유지되고 있지만,
크게 국문학과의 문학 교류는 지금도 없는 실정이다.
서귀포문학에서 국문학의 효시는
1950년대 초 6·25 한국전쟁을 피해 제주도로 피난온 문인들로 인해
서귀포문학 뿐만이 아니라
제주도문학 자체가 태동된 것이었다.
한일합방시기에는 몇 몇 문학인들의 제주 나들이는 있었지만
중앙문단과의 교류는 사실상 거의 없었다.
있었다하여도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동방의 태양을 쏘라' 로 당선된 시인 조명암 처럼
1930년대 말 대중가요의 가사를 작사하기 위해
전국을 답사하면서 서귀포에 와서 "서귀포칠십리'를 작사하였을 뿐
여타 문인들도 제주도와 관련된 작품을 크게 남기지는 아니하였다.
1956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제주지부가 발족되었고,
이듬해인 1957년 11월 서귀포예술인들이 모여서
지금의 한국예총서귀포지회의 전신인 1958년 2월 1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서귀포지부를 창립시키면서
“탐라예술제” 개최를 목적으로 서귀포 예인들의 활동이 본격 시작되었다.
1958년 당시 서귀포문총 창립 시에
문학 분야는 현경원(서귀농업고, 국어교사),
미술분야는 고성진(고영우 화백 부친),
서예(현중화 선생),
음악(강정호),
사진(강영철),
민속농악(한승헌),
연극(강성빈) 7개분야 였다.
문총서귀포지부는 1958년 6월 8~10일 까지 3일간 제1회 한라예술제 주최를 시작으로
서귀포 예술인들이 문총서귀포지부의 시대를 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당시 학교 중심으로 이뤄졌던 교내문학校內文學의 실상을 어떠했는지,
김광협 자선시집『황소와탱크』김광협 연보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김광협의 나이 16세 1956년 서귀중학교 시절 전국발표지인「학도주보」에 꽁트 ‘어느날 밤’을
첫 문학작품으로 발표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1956년 서귀농림고등학교 농학과에 입학하여서는
당시 제주대학 교생으로서 국어교사를 지내고 있던 강군황 선생에게 문학 지도를 받으면서,
교내 백일장에서 수필 ‘달맞이꽃’이 장원되었다.
계속하여 학교 교지인 「천지연」에 단편 ‘무지개 서는 마을’을 게재하였고,
1958년「학도주보」주최 전국고교문예작품 공모에 ‘밭’이 당선되었다.
『학원, 6월호』에 ‘딸기’가 게재되었고,
국학대학 주최 전국고교문예작품 공모에서 시 ‘마음’, 수필 ‘自我’가 동시에 당선되었다.”고 하여
당시에 학교에서도 문확활동이 매우 자유롭게 이뤄졌음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이러한 교내문학의 자양분을 통해
당시 학생신분이었던 김태국, 박성원, 정인수, 강우성, 오옥단, 오성찬, 김광협 등이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였다.
1960년대는 서귀포문학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다.
서귀포시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김광협(호근동)은 1963년 월간교양지『신세계』에서 공모한 제1회 신인상 시부문에 “비와를 위한 시”가
시인 박두진 심사에 의해 당선되어 등단을 하였고,
196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강설기”가 당선되었으며, 이는 서귀포문학의 최초 등단 시인이기도 하다.
김용길(중문동)은 1996년『시문학』에 2회 추천이 되어 등단하였다.
오성찬(서호동)은 1969년 신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별을 따려는 사람들”이 당선되어 소설가로서는 최초의 등단작가가 되었다.
1970년도는 서귀포문학의 발전기였다.
한기팔(보목동)은 1975년『심상, 1월호』신인상을 통해 시 ‘원경·꽃·노을’ 등 3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김진자(상모리)는 1976년 『한국문학』신인상 시 ‘연가’가 당선되었으며,
김용해(중문동)은 197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산조’가 당선되었고,
강통원(중문동)은 1977년『시문학, 10월호』시 ‘일요일·무적·백지“ 등 3편이 추천되었고,
현길언(수망리)는 1979년『현대문학, 7월호』단편소설 ’성 무너지는 소리·급장 선거‘ 2편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80년대는 서귀포문학의 본격적인 서막시대였다.
강정훈(예래동)은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멧돌’이 당선되었고,
오승철(위미리)은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겨울귤밭’이 당선되었는데, 서귀포 최초의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강방영(안덕면)은 1982년『시문학, 9월호』시 ‘저녁’이 추천완료되었으며,
고정국(위미리)은 1988년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길’이 당선되었고,
김광렬(신산리)은 1988년『창작과비평, 봄호』신인상 시 ‘별’외 7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0년대 서귀포문학은 전 장르를 넘나드는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강문신(하효동)은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입석리 산과바다’가 당선되었으며,
강종완(태흥리)은 1990년『시대문학, 겨울호』신인상 시 ‘그대 곁에서는’외 3편이 당선되었고,
현춘식(신흥리)은 1990년『현대시조, 가을호』신인상 시조 ‘해녀손금’이 당선되었다.
윤봉택(강정동)은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제주바람’이 당선되었고,
현주하(강정동)는 1991년『문학과지역, 창간호』신인상 시 ‘꽁 삶는 날’ 외 4편이 당선되었고,
한천민(보목동)은 1991년『아동문예, 12월호』신인상 동화 ‘불과 새’가 당선되었으며,
고명호(위미리)는 1992년『현대시조, 2월호』신인상 시조 ‘영농일기’가 당선되었다.
안정업(위미리)은 1992년『월간 문예사조, 2월호』신인상 시‘파도’외 3편이 당선되었고,
이양수(월평동)는 1992년『아동문예, 4월호』신인사 동시 ‘보리밭’이 당선되었으며,
문상금(상효동)은 1992년『심상, 6월호』신인상 시 ‘세수를하며’ 외 4편이 당선되었다.
오용관(하효동)은 1992년『아동문예, 10월호』신인상 동시 ‘늦가을’외 1편이 당선되었으며,
김원욱(위미리)은 1993년『문학공간, 6월호』신인상 시 ‘첫눈’외 4편이 당선되었다.
강중훈(오조리)은 1993년『한계래문학, 창간호』신인상 시 ‘밥 차롱 속의 나라’외 9편이 당선,
유영매(하효동)는 1993년『우리문학, 겨울호』신인상 시 ‘사랑’외 4편 당선,
조명철(하원동)은 1994년『월간문예사조, 1월호』신인상 수필‘스승과 한란’이 당선되어 서귀포 최초 수필가가 되었다.
손미희(보목동)는 1994년『문학세계, 1월호』신인상 시‘메직아이’가 당선,
고권일(위미리)은 1994년『월간문예사조, 4월호』신인상 수필 ‘우리네 아이들을 위하여’가 당선,
채바다(성산리) 1994년『한국시』신인상에 시가 당선,
강순복(하효동)은 1994년『월간문예사조, 7월호』신인상 동화 ‘네발로 걷는 아이’가 당선,
오차숙(오조리)은 1994년『창조문학, 가을호』신인상 수필 ‘제주의 여인들’이 당선,
허은호(위미리)는 1994년『한겨레문학, 가을호』신인상 시‘하역’외 9펀이 당선,
양정보(신예리)는 1995년『수필과비평』신인상 수필 ‘변화 속에서’당선,
양성준(위미리)은 1995년『오늘의문학』신인상 단편 ‘떠도는 사람들’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95년도 이후에 등단한 작가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기로 한다.
서귀포문학 약사(1956~1963)
1. 서귀포 순수문학 동인
1961년 동인 『절벽』 김태국, 박성원, 정인수, 강우성, 오옥단, 오성찬. 이후 해체
1966년 동인 『인』 5집 까지 발간 박성원. 김용해. 김용길. 이후 해체
1983년 동인 『말』 창간호 발간 후 해체
1988년 동인 『문섬』현재 활동 중
1989년 동인 『트임소리』 글벗 1992년 발간 후 활동 중단
1991년 『글터』 1995년 5집 발간 후 해체
2015년 동인 『솔동산문학』 창립회원 강봉호. 강승원. 고현심. 김상보. 김익찬. 김진식. 박용창. 박인선. 변창세. 신희숙.
양시경. 오동헌. 윤봉택. 이순승. 이정규. 임춘복. 조창석. 한지헌. 한태실. 현기열. 황대현
2. 서귀포에서 현재 활동 중인 문학동인
1988년 동인 『문섬』현재 활동 중
2007년 동인 『현대문예작가회』 현대문예 출신으로 구성
2008년 6월 30일『성산포문학회』창립 성산포문학 5집 발간
2009. 동인『섬돌문학』학생동아리 『섬돌』출신으로 2009년 재구성 동인지 발간
2015년 6월 20일 동인 『솔동산문학』 예그리나에서 창립
※ 현재 동인활동은
- 문섬. 현대문예작가회. 성산포문학회. 섬돌문학. 솔동산문학.
3. 서귀포문학 이야기
《1958~1960년대》
1958년 문예총 서귀포지부 결성
1961년 『절벽』동인 김태국, 박성원, 정인수, 강우성, 오옥단, 오성찬.
1960년대 등단
김광협(시. 1963 신세계. 1965. 동아일보/호근동).
김용길(시. 1966. 시문학 추천/중문동)
오성찬(소설. 1969. 신아일보/서호동)
강우성(강대하)(시. 현대문학/위미리)
1965년 학생 동아리 『폭포』 강갑길. 박정석. 김대송. 강영순. 현수님.
1966년 동인 『인』 5집까지 발간 박성원. 김용해. 김용길.
1975년 학생 동아리 『정방(구쟁기)』 1983년 3집 발간 해체
《1970년대》
1970년 등단
한기팔(시. 1975. 심상/보목리)
김진자(시. 1976. 한국문학/상모리)
김용해(시. 1977. 한국일보/중문동)
강통원(시. 1977. 시문학/대포동)
현길언(소설. 1979. 현대문학/수망리)
《1980년대》
1980년대 등단
강정훈(동화. 1980. 조선일보/신산리)
오승철(시조. 1981. 동아일보/위미리)
강방영(시. 1982. 시문학/창천리)
고정국(시조. 1987. 시조문학/위미리)
김광렬(시. 1988. 창작과비평/신산리)
1981년 서귀여고 문예반 『별밭』
1982년 서귀포 내 고교동아리 『섬돌』 김용길 지도
1983년 동인 『말』 창간호 발간 후 해체
1988년 동인 『문섬』
1989년 『트임소리』 (글벗 1992년 발간 후 중단)
1988년 『서귀포문학회』 결성
《1990년대》
1990년대 등단
강문신(시조. 1990. 서울신문/하효동)
강종완(시. 1990. 시대문학/태흥리)
현춘식(시조. 1990. 현대시조/신흥리)
윤봉택(시. 1991. 한라일보/강정동)
현주하(시. 1991. 6. 문학과지역/강정동)
한천민(동화. 1991. 12. 아동문예/보목동)
고명호(시조. 1992. 2. 현대시조/위미리)
안정업(시. 1992. 2. 문예사조/위미리)
이양수(동시. 1992. 아동문예/월평동)
문상금(시. 1992. 6. 심상/상효동)
오용관(동시. 1992. 10. 아동문예/하효동)
김원욱(시. 1993. 6. 문학공간/위미리)
유영매(시. 1993. 겨울호. 우리문학/하효동)
조명철(수필. 1994. 1. 문예사조/하원동)
이후 등단작가는 정리되는 대로 게재합니다.
1991년 『글터』 1995년 5집 발간 후 해체
1993 『서귀포문학회』가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로 창립
한국예총 서귀포지회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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