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길손(나의 시)

양중해 선생님

相民 윤봉택 2024. 3. 31. 13:43

2016. 12. 5.

 

그때 까지만 하여도

1991년도 까지만 하여도

시를 발표할 수 있는 문예지가 많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다 합쳐도 10개 정도 였다.

 

왜냐하면 전두환 정권 때 언론 통제를 위해

언론 통폐합을 하면서

일반 문예지 까지도 모두 짤라버렸다.

 

그래서 1990년대 들어서

주무 관청의 허락을 받아서 겨우 문예지를 등록하던

그런 시절에

나의 등단지 "월간 문예사조"도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등록된 종합 문예지 가운데 하나였다.

 

이 때 까지는

등단하려면 지방 문예지로 등단은 어림 반푼도 없었다.

신춘문예 당선이 되었어도 1회 추천으로만 인정하였고

 

3류(???) 문예지일 지언정, 반드시 중앙 문예지로 등단해야만

문단에 명함을 내밀 수가 있었고,

한국문협 가입도 등단 3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던

그런 문단 풍토가 1992년 까지 유지되었고,

 

1993년 부터 언론 자유화가 되면서

각종 문예지가 중앙 지방 가릴 것 없이 홍수시대가 열려

많은(?) 문학 지망생들의 갈증이 해소되기 시작하였다.

 

1991년 그 시절

나는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제주바람으로 당선 된 후

당시 중앙 문예지 월간 '문예사조' 4월호 바람부는 섬 외 4편으로

2회 추천(신인상) 완료 절차를 거쳐 시단에 얼굴을 내밀 수가 있었다.

 

당시에는 언론사 문화부 기자님들이 직접 대면하여

기사를 작성하였었는데

그 때 언론 보도자료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양중해(1927-2007) 선생님께서 등단 축하와 격려 주신 육필을 소개합니다. 

 

 

 

 1991년 4월 13일 당시 제주일보 등단 소개 기사 

 

  고 양중해 선생님께서 1991년 4월 10일 문예사조 4월호로 시인 등단을 축하 하여 주시면서 보내 주신  육필 서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