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안-병마용갱

相民 윤봉택 2006. 6. 23. 13:46
 

 2003. 11. 22.

 진시황의 대역사였던 병마용갱가는 길. 고속도로에 진입 후 병마용갱 2㎞ 전방에 위치한 임동臨潼을 지날 무렵 제주도에 많이 관상수로 심어지는 피라칸사스가 도로변에 일부 심어져 있었다. 짧은 거리에 심어진 것으로 보아 시험삼아 심은 듯하다.

 

 서안에서 50여㎞ 떨어진 곳에 있는 병마용갱은 밖에서 보기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였다. 진입하는 부근에 우리 지역의 오일장처럼 널려있는 노상매점 사이로 진용박물관秦俑博物館을 찾았다.

 

 입구에서는 검색대 세워 통과할 만큼 보안에 신경 쓰고 있었다. 안내원들은 각자 명찰을 달고 있었으나 원할 경우에만 안내하고 있었다. 입장료는 65元이었다.

 

병마용갱은 모두 1~3호실로 구분되어 있었으나 안내원은 지금도 지하에는 발견된 것보다 발굴되지 않은 것이 더 많다고 하였다. 우리가 흔히 병마용갱으로 알려진 곳은 제1전시실에 있었다. 전체 면적 중 절반은 이미 발굴을 마쳤고, 나머지는 표층만 걷어낸 체 그대로 전시하고 있었다.

 1974년에 발견되어 발굴되기 시작한 진시황의 병마용갱은 당시 진시황이 어떻게 정치를 하였는가를 단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었다. 도량형을 통일하기도 어려운데 언어를 통일한다는 게 그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굳이 분서갱유가 아니라 하여도 시황의 통치에서 이겨낸 시황제의 역사 또한 그의 죽음과 함께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 또한 인과응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1호갱에는 군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한 사람도 닮은 사람이 없는 용俑들은 누구의 모습을 그리며 만들었을까. 전국 각지에서 징발되어온 장인들의 피눈물 속에서 두고 온 처자의 모습과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을 그리며 마무리되면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장강을 사이에 두고 애틋하게 그리다가 역사에 참여한 모든 인부가 벌판에서 무참하게 살해되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누군가 열심히 작업하는 장인의 등뒤로 회초리를 들었는지, 아  저 토용土俑 병사의 눈매가 무섭게 찢어져 있구나. 그런데 저 토용의 머리는 왜 저렇듯 고운가 아마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며 무심결에 아내 머리 쓰다듬듯 머리 한올 한 올을 빚어 나갔으리니,......그런데 저 표호하듯 한 준마의 머리를 보라 갈기를 휘날리며 천마처럼 중원을 달리려는 저 힘찬 기세를, 저것은 아마 장인들이 죽음을 예감하였으나 이미 늦었음을 알고 저승에서라도 혼만큼은 坑에서 빠져나와 저 천마를 타고 고향 땅으로 단순에 달려가고픈 그 꿈을 넣은 것이 아니더냐.

 

 제2호실에서는 폭군 진시황의 마차가 나란히 2대가 복원되어 있었다. 6년 전인가 경복궁에서 진시황전시회를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출장 길에 일부러 들려 관람하였던 기억 속의 그 마차, 흐릿한 조명 아래에서 마차를 응시하는 진시황제가 천년을 이겨 지금이라도 일어서서 다시 중원을 호령할 것만 같다.

 

제3호실은 진시황제의 무덤 발굴과 병마용갱이 조성되게 된 사연 등을 그림으로 담아 전시하고 있었다.

 

9450

 

 

제1전시실입니다.

 

 

뒤에는 아직도 발굴을 기다리는 병마용들이 있습니다.

 

 

 

 陜西省 文化廳 副廳長 樂可錫입니다.

 

 

 

이렇게

 

 

병마용갱 만들 때 어느 이름 모를 선인이 나뭇가지를 놓았난 봅니다.

 

 

 

 

 

나무가 그대로화석이 되어 굳어 있습니다.

 

 

 

 

 

제3전시실입니다.

아래에는 전석으로 바닥을 마감하였습니다.

 

 

 

 

 

그 주변 상가에서 독 같은 모조품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오름이 진시황제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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