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0.
바람 · 6
땅이여
너를 팔고 다시 버리고
바람의 씨앗을 심는구나
잡초도 꽃피울 수 없는, 해초인 듯
바람인 듯 뿌리 내린 섬
이 아침상 위에 네 식구 마주 앉아
손자 놈 흘린 밥알 주우시며
먼 길 떠나신 어머니
일어서다 지친 삶의 옹이에서
젖은 가슴 흔드는 제주바람
오늘 다시 불어 연체된 어둠을 날린다.
더 낮은 곳 더
따스한 곳을 위하여
이 겨울 깊은 눈은 나리고
눈이 쌓이지 않아 슬픈 마을에
한 집 건너 한 마을 지나는
각혈 소리
하이얀 눈 뜨면 오늘 아침은 설날인데
유자꽃잎 지듯 지는 듯 파도 타는 슬픔이여
압류된 닻이여
왜 섬을 떠나지 못하느냐
바람이여.
(제주문학 제22집, 1992)
시작메모
제1집『농부에게도 그리움이 있다』에 수록된 졸고입니다.
1989년 유기농사에 실패한 후, 무슨 농사를 지어야 굶지 않고 살 수가 있을까
망설이며 몇 년을 그리보내던 1990년대 초, 앓아 누워 계신
어머님께 밭을 처분하여 빚을 먼저 갚아야하겠다는 말씀조차 드리지 못하고
낚시대 없는 바닷가만 찾던 그 시절, 1992년 어머님 먼저 떠나가시고 겨울
모든 것 다 정리하고 습관처럼 바닷가를 찾았는데, 무슨 싸락눈이
하늬바람 타면서 그리 서럽게 나리던지요.
지금은 삶의 전설이 되어버린 하나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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