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길손(나의 시)

바람 · 6

相民 윤봉택 2024. 4. 19. 17:26

2008. 12. 10.

 

바람 · 6

 

 

 

땅이여

너를 팔고 다시 버리고

바람의 씨앗을 심는구나

잡초도 꽃피울 수 없는, 해초인 듯

바람인 듯 뿌리 내린 섬

이 아침상 위에 네 식구 마주 앉아

손자 놈 흘린 밥알 주우시며

먼 길 떠나신 어머니

일어서다 지친 삶의 옹이에서

젖은 가슴 흔드는 제주바람

오늘 다시 불어 연체된 어둠을 날린다.

 

더 낮은 곳 더

따스한 곳을 위하여

이 겨울 깊은 눈은 나리고

눈이 쌓이지 않아 슬픈 마을에

한 집 건너 한 마을 지나는

각혈 소리

하이얀 눈 뜨면 오늘 아침은 설날인데

유자꽃잎 지듯 지는 듯 파도 타는 슬픔이여

압류된 닻이여

왜 섬을 떠나지 못하느냐

바람이여.

 

 

 

(제주문학 제22집, 1992)

 

            시작메모

                   제1집『농부에게도 그리움이 있다』에 수록된 졸고입니다.

                     1989년 유기농사에 실패한 후, 무슨 농사를 지어야 굶지 않고 살 수가 있을까

                     망설이며 몇 년을 그리보내던 1990년대 초, 앓아 누워 계신

                     어머님께 밭을 처분하여 빚을 먼저 갚아야하겠다는 말씀조차 드리지 못하고

                     낚시대 없는 바닷가만 찾던 그 시절, 1992년 어머님 먼저 떠나가시고 겨울

                     모든 것 다 정리하고 습관처럼 바닷가를 찾았는데, 무슨 싸락눈이

                     하늬바람 타면서 그리 서럽게 나리던지요.

                     지금은 삶의 전설이 되어버린 하나의 편린...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37717

 

'해변의 길손(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억새꽃-1  (0) 2024.04.19
봅서게  (0) 2024.04.19
첫 눈 오는 날  (1) 2024.04.19
그대 바람으로 불어 오면  (0) 2024.04.19
그리움 나사시냐  (1) 202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