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따라서

법흥사 석분

相民 윤봉택 2013. 9. 12. 22:45

2013. 07. 29.

 

 

휴가 2일 째를 맞아

7월 29일에는

태백 황지와 검룡소

정선의 아우라지를  지나

구산선문 가운데 사자산문의 발상지 영월 땅 사자산 법흥사

 

법흥사의 석분과

법흥사의 부도를 찾았습니다.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09호 영월법흥사석분 (寧越法興寺石墳)은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 있습니다

 

내부 돌방의 벽은 자연석의 평평한 면을 가려서 10단을 쌓았는데

6단까지는 수직이고 7단부터는 각을 줄여 쌓았습니다.

 

천장은 넓고 평평한 1매의 뚜껑돌로 덮어 놓아 내부 전체가 거의 원형을 이루고 있고,

석분 뒷쪽에 돌로된 관이 하나 있는데,

이 석분은 신라 선덕왕 때 축조되어 자장율사가 수도하였다고 전해오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정조23년(1799)에 편찬된 전국 사찰일람지인「범우고(梵宇攷)」에 보면,

『흥령사(興寧寺)』재사자산(在獅子山) ‥ 사후일리(寺後一里) 유토굴(有土窟)

 ‥ 굴중유석함(窟中有石函)‥ 상유개(上有蓋) 언전(諺傳) 승보인패경(僧寶印具經) 소장지함운(所藏之函云) ‥ 』이란

기록이 있어 “흥령사 뒤에 토굴이 하나 있는데 굴 가운데 석함이 있고, 굴 상부 마무리는석판으로 하였다.

전하기를 이 석함은 승가(僧家)에서 사용하는 삼보인(三寶印)과 패경(貝經/경전)을 보관하였던 석함이라고 전해온다"라고 하고 있어

이미 오래전 부터 불가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석실(石室)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석분 오른 쪽에는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 제73호 영월법흥사부도 (寧越法興寺浮屠)가 있습니다.

 

기법이 매우 세련되면서도 화려합니다.

형태는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추었으며,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넓고 네모진 바닥돌 위에 놓인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겼고,

가운데 받침돌은 여덟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습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두루면서, 탑신의 몸돌은 앞, 뒤 양면에 문짝모양을 새기고,

나머지 6면에는 1구씩의 신장상(神將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습니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높게 달았으며,

꼭대기에는 축소된 지붕모양과 꽃봉오리 모양을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아 장엄을 하면서

전체가 8각을 이룬 모습으로 두꺼운 지붕돌 표현이나 높은 지붕돌의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수작으로 보입니다.

 

 

 법흥사의 원음루(圓音樓)입니다.

 원음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의미하는데,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 법문을 두루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자산문은 선양하신 징효국사의 탑비입니다.

사자산 적멸보궁으로 이어진 사잇길입니다.

 이렇게 가다가 문득 돌아서면

 모두가 설레이는 산빛입니다.

 그 곁으로 다가서는 징효국사의 부도 또한

 마지막 7월의 오후 시간을 맞이 하시는데

법흥사 적멸보궁 찾아가는 길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는데,

양산 영취산 통도사 적멸보궁.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 정선 고한  정암사 적멸보궁 등입니다.

자장율사께서 당나라로 구도가신 다음 서기 636년에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님을 친견하시고 나서 석가세존의 사리를 전해 받고 귀국하여서는

위의 다섯 곳에 사리를 모시고 5대 보궁을 세웠습니다. 

하여, 적멸보궁에는 불상이 아니라 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불상이 없는 게 특징입니다.

 적멸보궁 뒤에 있는 부도와 석분입니다.

 

석분입니다.

이 석분 안에는 돌로 된 곽이 하나 있는 데, 바로 승가에서 계를 전할 때 사용하는 삼보인(三寶印)과 불경을 보관하였던 함입니다.

 스님으로 부터 올라가서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는데,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폰카로만 담을 수 밖에요

법흥사에는 이와 같은 부도가 하나 더 있는 데, 아래 쪽에 있는 징효국사의 부도입니다.

그러나 이 부도는 징효국사의 부도 보다 더 화려합니다.

부도는 스님의 열반 후에 유골(사리)를 봉안하는 탑의 한 종류입니다.

그래서 절에 가면 부도전이라고 하여 별도의 장소에 부도를 모시게 됩니다.

하여, 스님들께서는 차안을 떠나 피안으로 가실 때는 훌훌 털어 반드시 부도를 내고나서야  떠나 가십니다.

때문에 부도를 내지 못한 스님들은 ...... 피안으로 가지 못한 경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적멸보궁에서 내려 서는 길

 나의 이목구비는 반듯하여도

 내 귀와 눈과 입과 코를 바라볼 수가 없으니

 눈 먼 장님과 벙어리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하면, 어떡하여야만 나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가 있을까

 

 사람아 나의 사람아

 너는 나의

 나는 너의 거울이 되어

 호수처럼 맑고 아름다운 거울이 되어

 서로의 마음을 온유하게 할 수만 있다면

 . . . . . .

 

 아마 이 좌대 또한 어느 고승의 탑비였을 것입니다.

 사자산문 선풍이 당간지주에 휘날릴 때는 대중이 이천명이 넘었다고 하였으니까요.

 부근에 발굴을 하다보면, 분명 그 날에 작은 흔적 하나를 느낄 수가 있겠지요 

 퇴수구(退水口)입니다.

 발우 공양 후, 발우를 씻고 난  천수물을 찌꺼기 없이 잘 담아낸 다음,

 6도 가운데 가장 다툼이 심한 아귀들을 위해, 아귀들이 먹고 이고득락할 수 있도록,

 이 퇴수구에다가 마지막 남은 퇴수물을 소리 내지 않고 천천히 비워 내립니다.

 

 

 

 

 

 

'문화유산을 따라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다  (0) 2013.12.05
제천 의림지  (0) 2013.09.15
징효국사부도  (0) 2013.09.05
코리안 타임  (0) 2013.08.31
법흥사  (0) 201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