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바람, 섬 풍경

제주올레 13코스

相民 윤봉택 2021. 5. 26. 21:53

2021. 05. 26.

제주올레 13코스

 

526일 수요일

오늘은 13코스를 걸었습니다.

 

오전 0756

자가로 용수리마을회관(한경면 용수리 4107-6)에 도착하여

회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도보로 500m 용수포구까지 이동하였습니다.

 

포구에 도착하여

방사탑-1을 살피고, 절부암으로 돌아가니

오전 81513코스를 시작하였습니다.

 

낙천리 마을회관에 11시에 도착 인증을 하고

의자공원에 앉아 준비해간 떡 간식을 먹고

 

오후 2시 저지마을 13코스 종점에 도착하여 인증 마치고

차 시간을 확인하니 3시 정각 출발하기에

주변 식당에서 고사리육계장(8천원)으로 점심하고

15시에 저지 14코스 안내소 앞 정류소에서

772-2번 버스 타고

용수리마을회관으로 돌아가니 20분 소요

 

삼소굴로 돌아 가다가

12코스 답사할 때 미쳐 살피지 못한

당산봉의 유래가 담긴 고산 차귀당

차귀포구에 있는 차귀좀녜당을 살피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주요 답사 지역은

올레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주변

유산 중심으로 살폈습니다.

 

13코스 출발점 용수리포구의 용수리는

행정구역 상 제주시 한경면에 속한다

 

용수리는 220세대에 460명 정도의 작은 마을

바다와 오름을 안고 있는

물이 풍부하여 논농사도 이뤄져 왔다.

 

용수리 이전에는 우포라고 하였다

해변이라 예로부터 왜적 침탈이 빈번하여

방호소(육군)와 수전소(해군)가 있었다.

 

용수리라는 마을 이름은 불과 100년 전

용수리 용당마을에 있는

용못(용수龍水)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며,

용수리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가뭄에도 물이 가물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는

이곳을 숭숭물이라고 하여 용수리라 하였다고 한다.

 

볼거리 느낄거리

 

1. 용수리 방사탑(매조재기)

2. 지새개/용수포구

3. 主事金道謙妻賢媛高庚生紀念碑(주사김도겸처현원고경생기념비)

4. 절부암(節婦岩)

5. 관광정(觀光亭)

6. 효열탐라고씨의 정문(孝烈耽羅高氏之閭)旌門

7. 순례자의 교회

8. 벵딧물과 기와집

9. 아홉굽마을 낙천리

10. 아홉굽물

11. 저갈물(봉천수)

12. 낙천의자

13. 소록낭머들 오일하르방당(午日本鄕)

14. 잣질

15. 용선달리 설촌

16. 구멍목이

17. 용선달리 본향당(하르방당)

18. 저지리 닥멀본향(허릿당)

19. 저지오름 산정 전망대

20. 저지오름 칠성단

21. 닥모르오름(저지악)

22. 제주올레 13코스 종점

 

제주올레 13코스 출발점 / 용수포구 절부암 전면

용수포구에서

 

남쪽 용수리 방사탑에서 바라본 용수 포구 / 지새개/용수포구 방사탑 사이에 있는 포구 이름이다. ‘지새’는 기와, ‘개’는 포구의 제주어이다.   예부터 용수에서는 기와가 생산되어 기와 굽는 굴이 있었다. 절부암 뒤 ‘엉덕동산’ 주변에 ‘굴터’가 바로 기와를 굽던 자리이다.

남쪽 용수리 방사탑에서 바라본 용수 포구 / 지새개/용수포구 방사탑 사이에 있는 포구 이름이다. ‘지새’는 기와, ‘개’는 포구의 제주어이다.   예부터 용수에서는 기와가 생산되어 기와 굽는 굴이 있었다. 절부암 뒤 ‘엉덕동산’ 주변에 ‘굴터’가 바로 기와를 굽던 자리이다.

남쪽 방사탑 / 용수리 방사탑(매조재기) / 포구 남쪽에 있는 방사탑은 남쪽 지경에 ‘화상물’이 있어 '화상물탑'이라고도 한다. 탑은 바닷가 암반 위에 원뿔형으로 세워졌다.   현무암 자연석을 대충 다듬질하여 쌓음 돌로 이용하였다. 축조 방법은 허튼층쌓기를 하고 있으며 속은 잡석 채움을 하였다.   탑 위에는 높이 105cm 너비 80cm 정도의 긴 돌이 세워져 있다. 형태가 새의 부리와 흡사하다. 서쪽에 있는 차귀도와 바다를 향하고 있다. 탑-1과는 약 500m 떨어져 있으며 같은 방향을 하고 있다.   이 탑 속에는 보습을 묻었다. 보습은 흙을 일구는 농경 도구이다. 쇠의 강함을 통해 악한 기운을 꺾기 위함이다.
북쪽 방사탑 / 방사탑은 ‘방쉬’를 목적으로 마을의 액운을 물리치거나 또는 풍수상 허한 곳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다 용수마을 포구에는 바다로부터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포구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방사탑이 있는데, 남쪽(화성물탑), 북쪽(세원탑)이 있다.   포구 북쪽에 세워진 방사탑은 '세원'이라는 원이 있는 곳에 있어서 '세원탑'이라고도 한다. 탑은 바닷가 암반 위에 원뿔형으로 쌓아졌다. 높이 3.7m이다. 쌓음돌은 현무암 잡석인데 대략적인 다듬이 되어 있다.   쌓음 방법은 박돌허튼층 쌓기를 하고 있고 속은 잡석치채움을 하였다. 탑 위에는 높이 10cm, 너비 60cm 정도의 길쭉한 새머리 모양의 돌을 세워 놓았다. 방향은 서쪽인 바다를 향하고 있다.   이 탑 속에는 멍에를 묻었다. 멍에는 밭갈이나 마차를 끌 때 소의 목과 어깨 부위에 걸치는 것으로 아주 강한 줄과 나무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질기고 강한 용도의 도구를 묻었다는 것은 마을의 허한 곳을 강하게 막기 위함이다.

 

主事金道謙妻賢媛高庚生紀念碑(주사김도겸처현원고경생기념비) // 이 비는 1930년(경오庚午) 소화 5년 9월 용수 우포동민과 부녀회에서 건립한 비석이다. 이곳 식수(용천수)와 관련하여 세운 듯하다. 이 시기에는 용수포구를 ‘용수우포’라고 하였다.

 

비석 후면

 

용수포구 내항 / 절부암 전경 // 절부암(節婦岩) 절부암은 용수리 4241-5번지에 있다. 슬픈 탐라 여인의 한을 안고 있는 절부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1852(壬子)년 춥디추운 겨울 어느 날 이 마을 가난한 청년 강사철(康士喆)이라는 총각과 고씨 성을 가진 19세 처녀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듬해 겨울 동짓달 13일 동네 어른 좌영은·홍연득 두 분을 따라 청죽을 베러 대섬(차귀도)으로 테우를 타고 나갔다. 섬에서 청죽을 베어 테우에 싣고 포구로 돌아오다가 거센 풍랑에 세 사람 모두 실종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고씨 부인은 식음을 전폐한 체 해안가를 따라다니며 남편을 찾아 헤맸다.   다음 날 동네 어른 좌영은 시신은 바다에 떠올랐고, 15일에는 머리가 없는 시신이 떠올랐으나 홍연득의 시신으로 확인되었다.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한 고씨 부인은 끝내 그날 밤 묵 매어 죽었다. 고씨부인 3일장을 치르던 마지막 날 남편 강사철 시신이 부인이 목매었던 언덕 해안가에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남편과 부인의 시신을 당산 동쪽 능선 매부 이경보의 밭에 안장하였다.   1866년 이러한 애처로운 슬픈 이야기가 신재우(愼載祐) 대정현감에게 전해지자, 현감은 고씨 부인이 목맸던 바위를 절부암이라고 음각을 하였고, 매년 3월 15일 추모제를 지내도록 하여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절부암은 제주도지정 문화재 기념물이다. 또한 절부암에 자라는 많은 수목 가운데 범섬과 여기에서만 자생 확인된 환경부 보호종인 ‘박달목서’가 있는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위에 단층이 아닌 다층 건축물을 허가한 것은, 도대체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과연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 절부암에는 환경부 보호종인 “박달목서” 한 그루가 있는데, 도내에는 범섬과 이곳에만 자생하고 있다.
우측 나무가 환경부 보호종 "박달목서"이다
관광정(觀光亭) 절부암 바로 위 도로 변, 용수리 4241-5번지에 있다. 1960년(단기 4293년) 10월에 용수리민들이 세웠는데, 재밋는 것은 비석 후면에 신미갑회(辛未甲會) 즉 1871 신미년에 태어난 김일호(金日昊) 등 8인 이름이 각인되고, 당시 신미생 나이가 90이 되었기에 마을에서 기념으로 관광정 비석을 세운게 아닌가 한다.
관광정 / 정자가 없다. 처음부터 

 

관광정 비석 후면

 

13코스 용수마을 올레
용수마을 담장과 올레

 

용당으로 가는 길 / 주변에 못이 많다. 그래서 용수 용당이다

 

효열탐라고씨의 정문(孝烈耽羅高氏之閭)旌門 // 이 비는 용수리 2328-3번지에 있다. 1942(소화17)년 4월에 세워진 이 정문은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정려비 정면에 석조로 정문을 세웠다. 열녀고씨는 고은복(高恩福)의 따님으로 진명서(秦明瑞)와 혼인하였다. 시부모 봉양은 물론 남편이 병을 얻어 위독하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살렸다. 부인은 1834년(도광 갑오)에 태어나시고 1914년(대정 3년 갑인) 5월에 돌아 가셨다.
순례자의 교회 // 용수리 2410번지에 있다. 2011년 7월 21일 세워진, 참 작은 그러나 원대한 “순례자의교회”는 1948. 6. 18. 고산에서 화순교회로 순회예배 가다가 4·3 무장대에 잡혀 순교하신 이도종 목사의 순교 정신을 기리고, 제주올레 13코스를 오가는 순례자를 위해 정필란 권사가 기증한 것이다. 이도종 목사는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출신으로 제주 1호 목사이다. 그의 순교비는 2014. 7. 23. 대정읍 무릉리 산 63번지 내 ‘무릉2리교차로’ 옆에 세워졌으며, 대정교회에는 기념비가 있다.

 

벵딧물과 기와집 용수저수지를 말하는데 군사가 주둔해서 못 물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용수리 377번지에 있다. 철새 도래지로써 많은 철새가 날아와 겨울을 나는 곳이기도 하다.

 

용수저수지 옆 기와집

 

제주올레 13코스 전체 15.9km 중 3km 넘어갑니당
제주올레 가장 맑은 화장실
화장실 옆 연못에는 수련들이 수런 거리며 오수를 즐긴다.
15.9km에서 5km 걸었넹

 

자왈을 개간하면 이런 모습이 됩니다. 여기에서 벌레와 머들을 깨어내야만 밭이 됩니다.

 

특전사 숲길

 

찍박구리 / 비추 생이가 소나무에 달려 있는 제주리본을

 

가을에 다시 가렵니다. 낙엽 전에
가서 닿으면 문득
쪼른숲질에서

 

고사리 숲질

 

이제사 7km 넘어갑니당

 

13코스 구간 중에 양치식물류가 유난스러이 하영 
탈곡기입니다. 보리. 조. 산디. 벼

 

불미마을 아홉굽 낙천리에 왔습니당 // 낙천리 낙천리는 ‘서사미’, ‘서천미’, ‘낙세미’라 하다가 낙천리로 불렸다. 1660년 불미를 위해 여산송씨가 두 아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불미마을이다. 불미는 밭을 갈 때 쓰는 보섭이나 철 솥을 만들기 위해 이뤄지는 행위를 말한다.   마을에는 뽀리동산(寶龍同山)과 저갈빌레 사이에 저갈물(猪巨水)이 있고, 지층 자체가 불미에 필요한 점토가 많아 다른 지역과 달리 물이 지하로 스미지 않아 물이 풍부하다.   이러한 이유로 불미 재료인 흙을 채취하면서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물이 고여 지표수가 모여들면서 아홉 개의 못이 형성된 것으로, ‘아홉굿연못(오빼미물)’이라 불리는 중산간 마을이다.   ‘굿’은 낙천리에서 ‘못池’을 의미한다. ‘아홉국’은 아홉 개의 연못을 말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연못이 정비된 것은 1922년대 조수·청수·저지·낙천리 등 4개 마을에서 공동작업으로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비되었다.   오빼미물은 현재는 1개의 연못으로 통합되어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고, 대신 인근 '새물'이란 곳에 인공으로 9개의 연못을 조성하여 놓았는데 낙천리 2098번지이다.

 

아홉굽물 / 굽이 아홉개입니당

 

낙천리 마을 풍경 -1

 

옛 집을 조금 살짝 다듬어 단장하셨네요

 

1970년대 초 중산간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 구조 

 

마을 중심에 "저갈물" 바로 앞 부분에 "돌확"이 빨래터입니다. 이 못은 우마용 식수로 사용되었기에, 세답할 때 비누 등으로 물이 오염도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돌학"을 크게 파서 3인이 동시에 빨래할 수 있도록, 빨래판 까지 만들어 놓으셨네요
3인용 빨래터
맞은 편 "돌확"은 1인용입니다

 

비스틈하게 빨래판을 만들어 이곳에서 빨래하도록 하여, 물의 오염을 방지하셨던 우리 선인들의 지혜롬움
그 중심에는 의자가, 저 의자에 앉아 사서삼경을 읽을까요. 아니면 명심보감을, 또 아니면 어린왕자를
낙수로 120번지 안 올레 // 바로 옆 골목의 제주올레입니다.
여기서 인증샷하니 11시가 되었넹

 

저 의자에 누가 앉을까요. 바람, 구름, 안개

 

소록낭머들 오일하르방당(午日本鄕) // 제주도 마을마다에는 신당이 2~3개씩 있다.   이 신당은 한라산신 계열, 나주 금성산 뱀, 불미와 관련 있는 도채비(도깨비)를 모시는 신으로 구분이 된다. 이 가운데 도채비를 모시는 도내 신당은 몇 안 된다.   낙천리는 불미를 하기 때문에 도채비를 모시는데, 도채비는 뱀신과 같이 밖에서 모셔온 ‘외방신’이다. 이 당은 낙천리 1880번지 내 북동쪽 팽나무가 있는 곳으로써 낙천리 본향당이다.   ‘소록낭머들’에 있어 ‘소록낭머들 오일하르방당’이라고 하며, 신목은 팽나무이다. 오일(午日)은 12간지 중에 말의 날을 말한다.   즉 쟁기에 보섭을 끼워 말이 밭을 갈기 때문이고, 그 보섭을 만드는데 살펴 주는 도채비를 모시기 때문이다.   본래 이 당은 한경면 조수리 본향당 “매와지 축일본향”에서 갈라온 가지본향당이다. 따라서 이 낙천리를 설촌한 송씨는 조수리에서 이곳으로 건너왔다고 보여진다. 제일은 소날(午日)이다.   이 도채비는 중국 만주에서 온 진씨 성을 가진 하르방으로 영감이라 한다. 여기에 당제를 지낼 때는 쌀밥이 아니라, 수수밥, 수수떡, 돼지고기, 담배를 쓴다.   신목은 팽나무로서, 일반 당과 달리 육아를 살펴주거나 병을 낫게 하는 역할이 없으니, 불미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단골들도 사라져 지금은 당의 기능이 없어졌다.   제주에서는 도깨비를 도채비·영감·참봉·선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놀이굿’ 가운데 ‘영감놀이’는 바로 도채비를 형상화하여 이뤄지는 굿판이다.   제주도 내에는 이렇게 도채비를 모시는 당은 낙천리 소록낭머들 오일하르방당, 한림읍 금능리 금능 본향 연딧가름 영감당, 한림읍 비양도 송씨영감당, 제주시 도두리 쇠촐래미 영감참봉또 엉물당 등이 있다.  
잣질 ‘잣’은 성(城)을 말하는 고어로써 제주도에만 남아있는 언어이다. ‘질’은 길의 제주어이다. 따라서 ‘잣질’은 성이 있는 길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성城은 특정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돌 또는 흙을 이용하여 높게 쌓은 것을 의미하지만, 제주도에서 ‘잣’은 대부분 담장을 말한다. 울타리 담장을 ‘우잣담’, 목축 목적으로 쌓은 담장은 위치에 따라, 상잣·중잣·하잣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잣질’은 올레 좌우 일정 높이로 쌓은 담장 사이로 길이 있어 ‘잣질’이라고 한 것이다. 행정에서 2011. 11월 886m를 복원하였다.

 

이게 우리가 말하는  진짜 진짜 "잣질"입니다.

 

9km 걸어 드니, 멀리서 저지오름이 보이네요 

 

우리는 세마디 지명이나 이름에 익숙하여 마을 이름이 이렇게 길어지면, 과거에는 이름이 다양했었습니다. 

 

용선달리 설촌 “용선달리”는 조수리 151번지에 있다.   조수리 설촌의 발상지이다. 1610년대 전주이씨의 이동빈에 의하여 이뤄졌는데, 바로 “용선달리”에 정착하면서 부터이다.   이후에 “조호수리”로 부르다가 1800년대 현재 조수리가 되었다. 여기에서 저지리와 경계를 이룬다.

 

 

구멍목이 “구멍목이”는 조수리를 설촌한 이동빈 후손들이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물통이다. 용선달리에 물통, 길 건너 낙천리 13번지에 두 개의 물통이 있다.

 

용선달리 본향당(하르방당) 조수리에는 할망당(매와지)·하르방당(용선다리)이 있는데, 용선달리본향당은 조수리 149번지에 있다.   이 당은 2008년 제주신당조사에서는 저지리 용선도리 일뤠하르방당으로 조사되었다. 이 본향당은 고산리 차귀 허릿궁에서 갈라진, 신창리 “검은머들 법사용궁또”에서 다시 갈라온 당이다.   이 당은 고씨 선생이 설립한 것으로서, 당산은 송아오름이며, 제일은 매달 1일과 15일이다. 13코스 용선달리 지나 140m 지점 팽나무가 신목이다.  

 

우아 10리도 못가서 발병이 

 

아리랑 고갯질에는 돌담도 몸살을 합니당 

 

드디어 닥모르

 

저지리 닥멀본향(허릿당) // 이 당은 저지리 1894번지에 있다. 저지(닥멀)오름 오르기 전 화장실 주차장 동쪽 직선거리 100m 지점에 있다. 신목은 팽나무이다.   이곳 당신(堂神)은 서귀포시 호근마을 정좌수의 일곱 자녀 중 말젯ᄄᆞᆯ로써 ‘일뢰한집’이다. 뱀신으로 웃토산 계열이며, 제일은 3일 7일이다.    

 

ㅓ지리 본향당(허릿당)신목에 오색물색을 칭칭 / 나무를 보니 "구럼비낭"입니당

 

저지오름 주차장 13km 다왔당 이럴때일수록 조심조심 

 

오름 정상으로 가는 질

 

 

오름 정상에 있는 전망대

 

멀리 비양도

 

저지오름 굼부리

 

오름 순환로
오름 남서쪽에 있는 칠성단

저지오름 칠성단

저지오름에 칠성단은 남쪽 9부 능선 바위 아래 에 있다. 언제부터 이곳에 칠성단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당시 학림사 스님이 이곳에서 칠성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현재는 에 단을 만들어 신위를 세웠다. 지역 주민들이 단골이다.

 

다 왔당
저지망을 옛 가옥

 

저지오름으로 가는 올레

 

13코스 끔점, 14코스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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